●오타쿠 감독- 오타쿠의 부류 흔히 안노를 일컬어 오타쿠 감독이라 부른다. 오타쿠로부터 시작한 이 감독의 작품들을 철저하게 기존의 작품들의 일종의 패러디들로 이루어진 패러디월드였기 때문이다. 그런 패러디 월드는 그가 "그 자신의 세계는 없는 껍데기" 라는 평을 받게 만들었지만, 사실 그가 빈 껍데기 이라서기 보다는 그가 오타쿠이기에, 그에게 구축된 세계관이 오타쿠라는 껍질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오타쿠를 보는 입장에 있어서 오타쿠가 변태적이며 미소녀 게임을보며 침을 질질 흘리고 마스터 베이션을 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오타쿠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분야가 진지한 것으로 인식되기를 바라며 그것을 일종의 예술로까지 승화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디지몬으로 예를 들자면 디지몬의 동인지를 사 보고, 디지몬 관련 문화 상품이 집에 가득 쌓여 있다고 해서 오타쿠가 아니다. 그 사람이 만약 그 선에서, "디지몬은 그냥 재미있는 애니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좀 열광적인 팬의 선에서 그칠 뿐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디지몬을 예술이나 진지한 것으로 인정받길 원하고, 그것을 가지고 깊이 고찰한다면 그것은 오타쿠다. (물론 그렇다고 디지몬의 예술성이 격상되지는 않는다)
안노가 오타쿠 출신의 감독이면서도, 왜 동인지들을 싫어하고, 에바 프라모델을 보고 한탄하였는지는 그가 그런 오타쿠였기 때문이라는 배경 사실이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작품이 상업적인 상품이 아닌,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거나, 최소한 진지한 메시지가 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에반게리온의 문제는 에반게리온이 가지고 있는 그 상업성의 냄새이다. 안노는 에바의 캐릭터 상품이 나오는 것을 거북해 했기에, 에반게리온의 디자인은 프라모델로 금형화하기 어려운 디자인을 채택했던 것이고, 그러나 반다이가 그것을 만들어 버리자 거기에 한탄을 했던 것인데 그렇다고 보기에 에반게리온은 상업적 냄새가 너무 짙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상업성에 대한 거부가 안노의 의도적인 쇼였는지, 아니면 이 사람도 자신 스스로가 느낄 수 없을 만큼의 상업주의의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안노의 에반게리온은 상업주의에 대한 거부와 상업주의가 합일된 아주 복잡한 작품이다. 
●안노와 상업주의
사실 안노가 오타쿠들을 좋게 볼 수 없었던 이유는 가이낙스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만든 왕립우주군의 실패 때문이다. 자신이 진짜 힘을 기울여 제작한 왕립우주군의 실패 이후 안노는 어느정도 오타쿠들의 취향을 맞춰본 건버스터나, 나디아를 내 놓았는데, 그것의 성공은 안노로 하여금 더욱 실망감을 안게 했다. 상업적인 요소들만 집어 넣은 작품들의 계속적인 성공과 그에 따른 안노의 실망감은, 결국 오타쿠들에 대한 실망감으로 번졌고, 오타쿠 출신이지만 자연히 안노는 오타쿠들을 좋아 할 수 없었다. 에바는 그러한 안노의 오타쿠들에 대한 실망이 배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한 실망감은 다분하게 에반게리온애, 폐쇄적이고, 나약하며 비뚤어진 소년이 세상으로 나오는 만화 즉, 오타쿠가 그들이 두려워하는 세상 밖으로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에반게리온에 상업적 요소는 에반게리온을 통해 일본의 침체된 애니메이션 시장을 다시 활력을 주고, 오타쿠라는 계층의 확산을 유도했다. 이 점 또한 모순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애초에 오타쿠들의 상업성에 대한 경배를 거부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성에 대해 경배하게 만드는 애니메이션을 또 생산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상업성과, 상업성의 거부는 한 작품안에 양립할 수 없다. 상업적 요소들이 한 작품에 들어가는 그 순간에, 상업성의 거부 조차도 그 작품의 상업성을 높여주는 주요한 요소가 되어 버리게 된다. 처음에 단순한 재미를 투구하는 듯한 작품이, 어느 순간 진지해 지면서, 주어지는 아우라는 그것이 완성도가 높았을 경우에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 작품을 재 평가 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고, 그 재평가는 그것의 요소가 비 상업적이라 할 지라도, 결국 그로인해 나타나는 효과는 상업적인 이윤 창출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비상업적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오타쿠에 대한 실망과, 그들을 나오라고 할 거였으면, 로드무비같은 방식이 되었어야 했겠으나, 안노는 자신의 작품 안에서는 상업적 노선을 추구해 버렸다. 이러면서 상업적 캐릭터 상품이 나오는 것에 혀를 차고 한탄을 하는 그의 행위는 어떻게 보면 파렴치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시각에서 보면 안노는 에바의 상업적 요소의 차용돠, 전형적 오타쿠적 스토리의 차용과 그것의 붕괴를 통한, 효과를 원했을 수도 있다. 아마 그럴 가능성이 꽤 높았으리라.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생각을 하게 하려면, 그 메시지가 많은 사람이 읽게 하려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상업성의 추구가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안노는 오타쿠들을 몰입시킨 뒤 충격을 주어, 그들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하려는 수단에서의 에바의 상업적 노선의 수용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러려 했다 하더라도, 안노는 그들을 깨닫게 하기는 커녕 그들을 더 광신의 늪에 바트려 버렸다. 
●에반게리온- 신드롬 에반게리온이라는 이름은 당시 일본 문화를 접하기 매우 어려웠던 한국에 까지 퍼져나왔다. 1995년쯤에 비디오를 통해 한국에 소개된 에반게리온은 한국 내에서도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에서도 그랬으니 정작 일본에서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에반게리온의 신드롬은 안노로 하여금 다시 그를 오타쿠들에 대해 실망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사실 작가주의적 성향을 조금이라도 띄고 있는 애니메이터라면, 자신의 작품의 확장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기업, 팬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매우 싫을 것이다. 건담의 감독인 토미노 요시유키도, 반다이의 지속적인 건담의 제작 압박에 캐릭터 몰살 스토리로 대터하는 등의 불편함을 표출했다. 에바의 성공은 tv판 25화 26화의 무언가 명확하지 않은 엔딩에 대해 팬층의 엄청난 항의를 불러일으켰고, 안노는 팬에게 끌려다니며 결국 첫번째 극장판 DEATH&REBIRTH를 만들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른다. 에바의 성공은 안노가 그토록 싫어하던 오타쿠들조차도 변화시킨다. 물론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전까지의 오타쿠 세대들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통한 탐구와, 분석은 물론 소모적 지식을 낳기도 했지만, 반면에 감독의 생각이나, 사상에 대한 토론, 이전의 애니메이션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들을 통한 하나의 예비 생산자로써의 오타쿠의 기능을 했고, 안노도 이러한 오타쿠 출신으로써, 감독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에반게리온 이후의 일본애니메이션의 오타쿠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진지한 고찰 보다는 캐릭터 상품을 소모하고, 동인지, 예쁜 비쥬얼에만 열광하며, 무조건적인 한 작품에 대한 복종과 충성을 바치는 소모적인 계층으로 전락해 버렸는데 이는 과히 포스트-오타쿠로 부를만한 것이었다. 에바는 워낙의 그 큰 애니메이션적 성공을 통하여,비디오 게임기의 성공과, 버블경제로 불황에 빠져있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대중이 아닌 특수계층을 노리고 이들을 위한 팬 상품을 찍어내게 하는데 일조했다. 결국 안노 감독의 에반게리온은, 안노에게 있어서는 사생아이자, 반항아라고도 볼 수 있겠다. 
●에반게리온의 진정한 의미- 오타쿠 벗어나기
신지는 그야말로 오타쿠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물론 작중에서 신지가 애니를 좋아한다던지 이런것은 없지만, 폐쇄적이고 소심하며 그러면서도 일종의 쇼맨쉽도 가지고 있는 것은 충분히 오타쿠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초반부의 에반게리온은 그런 신지의 오타쿠 월드를 확고하게 맞춰주는 듯한 환상이다. 신지에게 호감을 가진 미사토라던지, 신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레이라던지, 항상 신지에게 시비를 걸면서도 신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아스카라던지 그런 아스카와 미사토와 신지가 같이 사는 집이란 공간은 하나의 이상적인 환상을 가진 공간이다, 토우지나, 아이다 같은 친구들, 그리고 점점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아 나가는 과정 등은 현실적이기 보다는 오타쿠들의 머리속에 설정해 두었을 법한 유토피아 이기도 하고 환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환상들이 에바의 중 후반부로 넘어 가면서 하나하나 깨져 나간다. 미사토는 카지와의 관계를 통해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호감을 가질 수 없는 "불결한 어른" 이 되었고, 신지와의 관계도 조금씩 서먹해 진다. 레이는 복제인간, 괴물로 변함으로써 신지가 기댈 수 없는 대상이 되었고, 아스카와는 미묘한 호감보다는 신지에 대한 경쟁의식에 더 심해져 신지와 사이는 극단적으로 벌어지고, 신지가 아스카, 미사토와 함께 살던 환상세계인 미사토의 집은, 아스카가 점점 폐인이 됨으로 인해 공간 자체가 붕괴되고 만다 미사토의 대사 "이제 가족놀이도 끝인가."는 그런 환상이 깨지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기라도 하는 듯 하다. 아버지 겐도우와의 관계도, 토우지의 부상을 통해 극심히 악화되고, 좋은 친구인 토우지는 한쪽 다리를 잃었고, 아이다는 에바에 타지 않게 되었다는 신지에게 실망한다. 그리고 에바 0호기의 자폭으로 두 친구들도 다른 곳으로 떠나고, 2화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던 제3동경시는 호수가 되어버린다.
마지막에 신지에게 구원의 사도처럼 나타난 나기사 카오루는 자기 비하적인 오타쿠들의 우상이다. 잘생기고 좋은 성격에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자신을 알아주는 인물은 오타쿠들이 은근히 동경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며 그러한 절대적 이해의 이상형은 때로 동성애적 코드로 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카오루마저도 사도로써, 신지의 마음을 배신한 존재로 죽어버린다. 에바는 오타쿠들이 가진 애니메이션에서의 환상적 관계, 즉 처음엔 접근하기 힘들고 쌀살맞던 사람들과 점차 침해지고, 자신의 능력도 증명할 기회도 보여주고, 그러면서 또 좋아하는 사람도 하나도 아닌 둘 이상이 생기는 등의 식으로 연애 게임 시뮬레이션 마냥 전차적 단계로 구축되는 이상적 인간관계의 환상세계를 이처럼 하나하나 무너뜨린다. 모든것이 무너진 상태인 25화에서 인류 보완계획이라는 것이 시작된다. 
●인류 보완계획- 오타쿠 보완계획 인류를 보완하여 하나가 되게 한다는 것이 인류 보완계획의 전말이지만, 사실 에바 TV판에서의 인류 보완계힉이란 그 정체가 애매모호하다. 겐도우가 레이를 데리고 나가 인류 보완계획이라는 것을 실행하자고 하는데 은근한 암시만 몇가지 있었을 뿐 실질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몇가지 장면-미사토의 죽음이나, 리츠코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 이 몇가지 나옴으로써 네르프의 최후가 어떻게 되는지 은근히 보여줄 따름이다. 중요한것은 25, 26화의 신지의 독백과 사람들과의 문답이다. 그것은 오타쿠만의 환상 세계가 깨지기 직전의 괴로워하는 오타쿠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다. 거기에 질문하는 사람들은 신지의 세계를 깨고 나올것을 강요하지만 신지는 계속적으로 그것에 대해 거부하거나 회의를 느낀다.
그러나 자신의 독백과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을 통하여 점점 신지는 자신의 세계를 깨고 나올 마음을 가지게 되고, 결국 신지는 어두운 공간을 깨고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는다. 그것은 오타쿠, 그리고 소년이 성장하여 현실을 받아 들이고 인정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다. 마지막에 나온 멘트들인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는 어머니의 품에 있을 소년이 아닌 아버지를 따라가야 할 어른이 되었다는 신지의 멘트이다. 남자는 성장하며,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아버지를 닮아 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세상 모든 소년들에게 감사를.' 은 앞으로 자라나야 할 소년들에 대한 멘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에바의 티비판이 허무하게 끝났다고들 하지만, 사실 찬찬히 뜯어 보면 이런 소년이나 오타쿠들의 성장기, 그리고 자신의 좁은 세상이 깨지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성장기를 그린 것이고, 안노가 30대를 위해 이 만화를 만들었다는 말도 결국 스스로의 벽을 깨치고, 성장한 나이인 30대에게 던져주는 칭송이자, 마지막 장면의 박수는 그러한 자신과 동년배의 세대들에게 던져주는 박수이자, 자신에게도 던져주는 박수인 것이다. 
●새로운 에바에의 요구 -팬들에 의한 에바의 파괴, 그러내 정작 안노가 메시지 하길 원했던 팬들은 에바의 그런 결말에 허무함이나, 미 완결성을 이유로 새로운 에바를 만들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안노에게 있어서 에반게리온은 이미 끝난 이야기이고, 그가 에바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모두 정리한 상태였다고 본다. 그러나 팬들의 요구에 의해 그는 떠밀리듯이 극장판을 제작하여야 했고, 결국 death&rebirth라는 극장판을 통해 에바를 다시근 언급해야 했다. death는, 그동안의 에바의 총집편이 넘어 가고, rebirth의 경우는 뒤의 end of eva 와 겹치는 부분이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the end of evangelion -재시도조차 할수 없는 완전한 에반게리온의 끝. 아무래도 안노는 엔드 오브 에바를 통해 모진 결심을 한 듯이 보였다. 안노는 엔드 오브 에바를 통해 에바에서 가진 모든 요소들을 철저하게 남김없이 파괴시켜버렸다. 결과적으로 에바는 이제 후속작이 나올수 없는 완전한 끝을 맺어버렸고, 건담과 같이 그 세계관을 확장 시킬만한 요구는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한 까닭은 그러한 맥락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노는 우선 신지부터 철저히 파괴 시켰다. 티비판 중간중간을 통해 약하고 답답한 소년의 이미지를 어느정도 벗어버리려던 신지를 엔드 오브 에바에서는 전보다도 훨씬 더 답답하고 파국적인 모습으로 등장시킨다, 아스카의 병실에서 아스카를 붙잡고 하소연 하다가 자위를 하는 장면이라던지, 죽겠다고 버티는 모습이라던지, 미사토의 죽음 앞에서 우는 신지의 모습은 그간 보아온 신지의 모습보다도 훨씬 더 동감할 수 없는 답답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어서 안노는 레이도 파괴시켰다. 조용하고 신비한 이미지의 레이를 리리스로 만들면서, 그리고 양산형 에바들이 리리스로 동화되는 때의 모습들을 통해서 레이의 기존의 이미지를 완전히 박살내어 버린다. 사실 더미 시스템 파괴때 부터도 어느정도 파괴되었던 이미지이지만, 엔드 오브 에바에서의 레이의 이미지의 파괴는 심하다 못해 적나라하다.
아스카의 파괴는 이미 아스카가 어느정도 폐인이 되면서 성립되었지만, 정작 안노가 깨 버린 것은 아스카와 신지간의 묘한 관계였다. 좋아하지만 앙숙처럼 지내는 그런 관계를 안노는 극장판을 통해 확실히 갈라버린다, 신지가 아스카를 죽이려 할 정도로 그 관계가 깨졌다. 미사토는 비참하게 죽었고, 리츠코또한 어처구니 없이 죽었으며, 겐도우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에바에게 먹혀 버린다. 안노가 파괴한것은 인물뿐만이 아니다. 23화에서 이미 제3동경은 파괴했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이번엔 아예 세계 자체를 파괴해 버렸다. 전 인류의 LCL화는 결국더 이야기를 진행할 사람이 없어진 그 세계 자체의 종말이다. 안노는 에바들도 파괴시켰다. 에바 초호기는 우주로 가버렸고, 2호기는 뜯어 먹혔으며, 양산형 에바들은 석화되었다. 검은 달 안에 있던 네르프 본부또한 검은 달이 사라지면서 사라져버렸다.
한마디로 안노는 자신이 스스로 에반게리온의 모든 세계들을 다 파괴시켜 버린 것이다. 이미지라던지, 관계라던지, 모든것을 안노는 다 파괴사켜 버렸다. 에반게리온의 티비판이 소년의 환상을 깨기 위한 파괴를 하였다면, 엔드 오브 에바는 오로지 그 세계 자체의 소멸을 위해 파괴해 버렸던 것이다. 극장판의 OST중, Komm su"sser tod(오라 달콤한 죽음이여)는 파괴되는 자신의 세계를 찬양하는 듯한 노래로도 들린다.

●세계의 끝-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결국 엔드 오브 에바를 통해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에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안노는 오타쿠들을 향해 비꼬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현실의 장면들과, 극장판 시사회 장면들을 보여 주고, 신지, 레이, 아스카의 세명의 성우들을 보여 줌으로써 에바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 까지 보여줬다. 팬들이 가진 환상성까지도 파괴 시키려고 안노는 부던히 노력했다. 결국 안노에 의해 모든것이 파괴된 에바에서는 더 이상의 스토리가 있을 수 없게 되어버렸고, 기껏해야 동인지의 형태나 외전적인 게임등의 형태로 밖에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것 외에는 세계관의 확장도 불가능해 졌다. 최근에 발매된 게임 에반게리온 2또한, 에바의 세계관에 대한 보충이나, 외전적인 이야기 정도 외에는 더 벗어나지 못했다. 안노가 진정으로 파괴한 것은 에반게리온이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안노의 절규 -"제발 나와라!" 잘 생각해 보면 애니메이션에 있어서의 실사의 등장은 거의 테러의 수준에 가까운 행위이다. 애니메이션에서의 사람들이 현실과 같은 몰입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애니메이션의 모든 세상이 다 가상이기 때문이다. 즉 환상성 그자체로 이루어져 있는 세상이기에, 애니메이션에서 설득력만 잘 갖추어 주게 되면 사람의 연상작용은 자연스럽게 그러한 애니메이션이 설정해 둔 세상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려 한다. 그러한 것이 소위 말하는 리얼한 연출이고, 와이어 액션의 부자유스러움이 영화를 현실이 아닌 유치한 장난으로 격하시키는 부분과, 컴퓨터 그래픽과 화면 연출, 촬영 기법에 따른 말도안되는 액션신은, 와이어 액션보다도 가상성이 더 짙은 부분임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와이어 액션에 비할 수 없는 현실성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각적인 설득력이 더 강한 매체는 가상성의 고저를 떠나서 현실성을 부여시키고, 그 현실성은 곧 경이와 몰입력이 된다. 이걸 안노는 깨 버렸다. TV판 마지막에는 설정화나 원화를 집어넣고, 대사 대본을 집어 넣는 만행을 저지르는가 하면,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실제의 화면을 집어넣어 버리고, 아예 주요 캐릭터의 성우까지도 화면에 보여줘 버렸다. 이 것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작품 자체의 존재를 땅에 내 팽개치고 짙밟고 뭉개 버리는 행위에 가깝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 현실에서 상영되는 장소는 극장이고, 캐릭터는 사실 영상과 성우가 결합하여 발생하는 효과에 불과하다. 캐릭터는 허구다. 이 애니메이션은 허구다. 모든게 다 허구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장면이 아닌가?-이런점에서 난 에반게리온 극장판을 극장에서 5번 보고 울었다는 일본 오타쿠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그 오타쿠들에게 이게 현실이 아니니까 정신차리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건 거의 안노감독이 오타쿠들에게 "제발 나와라!" 라고 절규하는 듯이 보인다. 현실이 아니니까 여기에 빠져서 공상에 빠지지 말고, 나오라는 건데. 이런 말 할거면 안노 이 감독은 왜 도대체 에반게리온을 상업 공식을 차용한 뒤, 그것을 깨 부수는 방식을 이용 했는가?. 상업성과 그것의 파괴는 한 작품안에서 공존한다 하더라도, 상업성 파괴는 도리어 아우라를 만들어, 상업성을 강화시켜 줌을 모르는가? 보는 사람에게 "어 이거 그냥 재미로 보는 건줄 알았는데, 의외로 포스가 있네." 하면서 더 열광하고, 빠지고, 광신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었단 말인가? 
●안노 히데아키. 오타쿠 출신 이었던 안노 히데아키는 그런 만큼 더욱더 오타쿠들에게 실망하였을 것이다. 그는 다른 오타쿠 보다는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진지하고 상업적인 것을 싫어하는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에반게리온은, 인기 있을만한 요소들만 모아서 만든 일종의 비꼼이었다. 그리고 오타쿠들에게, 아직 자신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년들에게 하고 싶었던 메시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메시지 조차도, "허무하다." 라는 평가속에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결말을 강요 받았고 그것은 안노에게 있어서 침해 받지 말아야 할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은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근본적으로 토미노와 안노는 둘다 같은 문제를 가지고 절망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토미노가 스폰서에 의해 침해 받았다면 안노는 팬들에 의해 그것을 침해 당했고, 토미노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끝내려 했던 반면 안노는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파괴하였고, 결과적으로 토미노는 실패했고 안노는 성공했다. 더이상의 에바는 없게 되었다." -> 가 원문이었는데, 가이낙스는 이 한계를 깨 버렸다. 이러한 것을 얘기해 보자. 
안노 히데아키씨
● 신 극장판: 에반게리온 서(序) 그나마 안노가 궁극적으로 이룬 업적인 에반게리온의 재 생산성의 파괴는, 지속적인 실패로 위기를 겪는 가이낙스의 위기의식에 밀려, 결국 에반게리온의 신 극장판이 만들어 졌다. 나머지 극장판들은 나와 봐야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첫 시리즈인 서(序)의 내용을 보면 사실 그래픽적 간지의 심화 외에는 거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두가지다. 첫째. 에반게리온이 다시 등장했다. 둘째. 다음 극장판부터 이야기가 다르다. 이 두가지 요소는 안노가 성심성의껏 때려 부순 에바의 재생산에 대해 거의 정면으로 도전하는 격이 되며, 결국 에반게리온도 건담처럼, 하나의 거대한 월드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게 되는 이야기가 된다. 신극장판의 진정한 의미는 안노가 그토록 때려부수려 했던 재생산성, 즉 상업성의 부활이다. 안노는 지금 무슨 생각으로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감독을 하고 있을 까? 그의 사고가 궁금하다. 진심으로. ● 결론 결국 에반게리온의 가장 큰 문제는 변질되고, 극단적 상업주의로 변질되는 오타쿠 문화에 대한 지적과 일침을 상업성을 이용하여 주려 했다는 점이다 결국 에바는 상업적이면서도, 상업성을 부수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들었고, 상업성의 강력한 아우라는, 그리고 비상업성조차 상업성으로 바꿀 수 있는 상업성의 강력한 아우라는 잘 갖추어진 시장과 접목하며, 큰 상업적 파급 효과를 만들어 냈고, 적을 칭찬하다 막판에 까부순다는 고단수의 전법을 쓰려 했던 안노는 뒤통수를 맞게 되었다. 신극장판의 대두로 이어지는 에반게리온의 세계관 확장을 너무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에반게리온이 창출하던 막강한 상업역량을 다시금 확산시킬것이 틀림없고, 상업성과 포스트-오타쿠의 공고화는 더욱 더 강력해 질 것이다. 결국 안노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오시이 마모루처럼 철저하게 상업성과 거리를 둔 방식이 아닌, 상업성과의 융함을 통해 자신 스스로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씁슬한 일이 아닐 수 없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