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워너브라더스 사태는 시장구조만의 문제일까요? D:/일상적인정치

컨텐츠 유통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들
Lohengrin님의 이글루 트랙백입니다. 이 글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아서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립 해 봅니다.


1. 서론 

 사실 시장 자체의 구조의 문제에서 많은사람들이 원인을 꼽기도 하고, 그것은 대단히 정확한 지적이기는 하나, 이러한 논의는 결국 구조에 의해서 사람들의 시장 구조가 만들어 진다는 시각에 더 가까워 지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이 얘기는 현재와 같은 시장적 구조- 불법 다운로드가 성행하여 제대로 된 이윤을 창출할 수 없는 구조.- 에 많은 책임을 돌리게 되고, 결국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사람들의 인식도 전환되고 시장이 정상화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죠. 그러나 이러한 구조가 인식을 만드느냐? 아니면 인식이 구조를 만드드냐는 닭이 먼저인가 아니면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매우 난해한 이야기가 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서는 시장의 구조 문제 보다도, 문화 매체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인식론의 문제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은 가장 손 쉽고 효과가 강력하지만, 문제는 구조를 만드는 데에는 '인식' 이 반드시 내포되는 것이고, 이러한 인식을 문제 삼지 않은 상태에서의 구조적인 문제만을 가시화 시키는 것은, 결국 정확한 문제의 본질을 깨닫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조와 인식은 누가 먼저라기 보다는 상호간에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이것을 구조의 변화만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번 사람들의 인식에 포커스를 맞춰서 바라 보고, 그것을 통해 좀 더 다른 측면에서의 문제 바라보기를 시도해 볼까 합니다.


2.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써의 대중매체 
 
 그렇다면 우리가 문화 매체를 접하는 인식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우선 음악을 생각해 봅시다. 음악 자체를 듣기 위해서 시간을 할애 하는가요? 제가 보기에는 우리나라의 음악을 주로 소비하는 계층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무언가를 할 때, 적막한 분위기를 해소 하기 위해서 음악을 틀기도 하고요, 공부하면서 음악을 듣죠, 또는 버스 안에서, 아니면 춤을 추려고. 등등으로요. 이러한 경우에는 음악이 그 자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죽이거나, 소일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숫자가 많지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분명히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가들의 음악을 사서 듣고, 때때로 음악에 대한 글을 찾아 보면서 지식을 쌓고, 외부적 형태로는 시간 소일 처럼 보여도 사실 음악을 하나하나 뜯어들어가는 층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음악 자체가 음악을 듣는 '목적' 이 되는 것이죠. 

 미술도 마찬가지 입니다. 데이트 코스로써 갤러리에 들른다거나, 고상함을 표출하기 위해, 또는 투자를 위해 미술을 이용할 때, 이미 미술이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했을 뿐이죠. 영화도 그렇고요. 물론 사람들의 태도가 '수단' 과 '목적'으로만 나눌 수는 없겠죠, 애매 모호한 경우도 분명히 존재 합니다. 시간 소일하기 위해 음악은 듣는데, 음악에 대한 정보는 알려고 한다던지 하는 식으로요. 우리나라의 많은 부분을 보면 사실 문화 매체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는 유희에만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왜 원더걸스가 뜰까요? 음악에 관심이 있으면 원더걸스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음악은 수단일 뿐입니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섹스어필을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죠, 음악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죠, 그러나 이러한 그룹이 더 돈을 잘 벌고 인기가 많다면 우리나라의 문화 인식 자체는 매체 자체에 목적성을 두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수단으로써 인식을 하는 것으로 보이죠.


3. 인식의 문제에서 구매력의 문제로. 

 수단으로 인식하는가, 목적으로 인식 하는가, 라는 두가지 입장에 대해 우월을 두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화 매체 자체는 개개인이 즐기기에 나름이니까요, 그렇지만 어느 한쪽의 의식이 편중되어 있고, 시장 구조에 따라서는 이것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장 조건의 전제 조건은 복제매체를 획득하는 데에 있어 그 어렵고 쉬움의 정도입니다.
문화 자체를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수단이 주는 유희가 중요한 척도로 자리 잡죠, 이 말뜻은 곧, 굳이 이러한 문화 매체를 고집하거나 할 필요가 없고, 이것에 대한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지 않아도 그 유희를 즐길 수 있다면, 굳이 그 문화 매체에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제매체 획득의 편의성은 구매력을 감소시키는 큰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복제매체의 획득이 불편하다면 살것이다! 라는 견해는 너무 낙관적인 면이 있고, 사실 구하기 어려우면 그냥 관심을 돌릴 것이다. 이 쪽이 좀더 시니컬하지만 옳은 시각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복제 매체 획득의 편리성은 애매한 위치의 사람들, 즉 문화매체를 수단이나 인식으로 정의하기 애매한 위치의 사람들도 구매자가 아닌 복제 이용자로 바꿔 버리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더불어서 이런 편의성은 기존의 구매자들도 복제이용자로 바뀔 가능성이 농후해 지게 됩니다. 결국 이 두가지 요인의 만남은 결국 구매력을 하강 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문제는 이 둘중 하나만 바뀐다고 구매력이 회복되리라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라는 것이죠. 당장 다운로드에 대한 처벌이 엄정해 진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문화 매체를 유희의 수단으로써만 바라 본다면, 굳이 돈내고 그 문화 매체에 집착할 필요 없이 돈이 들지 않는 다른 유희거리에 매진하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서 얻어지던 흥보 효과의 상실을 가져 오고, 금전적인 시장 자체는 타격을 안 받을지 몰라도, 저변의 확대에 있어서의 시장은 큰 타격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또한 인식이 목적적으로 바뀐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문화 매체의 구매력의 증가를 가져오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문화 자체가 목적이지만, 문화매체를 입수하는 경로는 불법 다운로드에 의존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시장에 별다른 큰 구매력 향상을 주지 않게 됩니다.


4. 복제의 이윤 창출능력

 만약에 복제 매체를 통해 문화 생산자가 이익을 얻는다면 어떻게 보면 복제의 문제는 도덕적인 측면에서의 문제제기로 한정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복제의 문제가 애초에 근본적으로 생산자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 형태 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제는 이것을 통해 이익을 얻는 곳이 따로 있다는 것이죠.
 한국의 인터넷 환경보다도 더 공유성을 용이하게 하는 것은 메신저 시스템과 p2p, 그리고 고속 광역 랜입니다. 메신저는 정보의 유동성을 증가 시키고, 고속 랜은 복제 자료의 저장을 아주 쉽게하며, p2p는 그러한 복제물들을 아주 쉽게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의 문제는 인식의 문제와 맞물려서, 구매자층이 소멸되는 현상을 빚게 되는 것이죠. 제가 보기에는 인식의 문제가 크지만, 이런 인식문제에, 문제의 심각성을 더 해주는 것은, 복제매체를 너무나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장 자체가 문제가 되고, 결과적으로 문화 산업이 2차생산물의 가능성은 커녕, 문화산업의 이익이 고스란히 p2p업체등에 흘러가게 되는 것이죠. p2p업체의 이러한 이익의 획득은 이윤창출계층이 늘어나니 좋은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p2p업체의 이윤이 생산자에게 있어서 재창출 가능한 이윤으로 창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또한 복제 매체를 접한 사람들이 문화 생산품의 구매자가 되지는 않기 때문에 결국 시장 구조는 만드는 사람과 이윤을 보는 사람이 따로 있는 형태를 띄게 됩니다.


5. 인식인가 구조인가?

 위에서도 여러번 적었듯이 저는 인식의 변화와 제도적 변화가 동시에 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의 구조 자체의 문제를 들어 그것만 해결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소 낙관적인 기대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문화매체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도, 문화를 목적 그 자체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어느정도 확산되어야 만이 좋은 시장이 형성될 수 있겠죠. 현재와 같은 인식과 구조로는 한국에서 문화 산업은 성행하기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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