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재개발.

평균 서울시 한개 구 마다 1~2개 이상의 뉴타운이 형성되고 있다.


끊임없이 부정당하는 우리의것.  

사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우리 고유의 것을 부정하던 역사였다. 우리는 일제를 겪으며, 과거 조선의 모든 정치 사상과 체제를 부정해야 했고, 그러한 경험은 우리에게 '옛것=낡고 고루한것, 새것 = 오오 이거슨 진리'와 같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전통 풍습은 지금 순간에도 부정당하고 있으며, 남아 있는 문화 요소들은 그나마 가치를 인정받고 남아 있는, 선별적인 것 들이다. 판소리가 우리의 것이라면, 포장마차 문화도 우리의 문화가 아닐까. 하지만 판소리는 존중받지만 포장마차는 철거당한다. 외양적인 "깔끔함." 내지는 전통적인 아우라를 풍기는 것만이 전통으로 남고, 전통의 아우라를 풍기지 못하는 것은 철거되고, 구습이 된다. 그 결과 우리는 남겨야할 우리의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전통이 부재된 국가가 많지만, 우리도 여느 나라 만큼이나 심각하게 전통이 남아 있지 않은 나라라고 생각하는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전통은 끊임없이 부정당하다 보니, 이제 전통의 부정은 일종의 관성처럼 되어 버렸고, 다시 전통을 찾을라니 무엇이 전통이고 우리 고유의 문화인지 방향을 종 잡을 수 없다. 우리의 한복은 과연 우리의 의복인가, 아니면 우리와 단절된 과거에서 올라온, '명절전용의복'에 불과한 것인가?

 피막골은 이전에 명확히 정립되지 못한 도시 개발계획에 의해서 다소 깔끔하지 못한 형태의 상업지구가 되었지만,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상권을 만들며 나름의 음주문화를 구성하였다. 또 낙원상가도 다소 무계힉적이고 복잡하지만, 그 안에서 세계 기네스북에 오를 만치 집약적인 악기 시장을 만들었고, 수 많은 음악가 지망생들의 알바터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피막골은 이미 철거에 들어가고 있고, 낙원시장도 12월에 철거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면 좋겠다. 
 이렇게 피막골이나 낙원시장, 그리고 과거의 동대문시장이나 청계시장과 같이 기존에 형성된 것을 밀어내고, 새로이 재 개발하는 데에는 분명히 경제적인 이익이 1차적으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철거하는데에 익숙하고, 철거와 재개발이  서울 시냐에 타워크레인이 쉴새없이 돌아가는데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익숙한 우리의 일상안에서는, 기존의 것이 단순히 낡고 불결하고 보기 안좋은 것이라는 우리의 기저에 깔린 의식이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익의 재개발, 냉정한 얼굴을 한 재개발 

 사실 재 개발은 정말 구조적으로 낡고 허약한 주거지를 개선하는 것이 주 목적이겠지만, 우리에게 재개발은 필요의 논리로 작동하지 않는다. 재개발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경제 논리와, 이득의 논리이다. 재개발을 통해, 더 좋은 주거지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통해 이익을 취하려는 건설사들, 그리고 재개발로, 더 좋아지고, 오른 집값의 혜택을 얻으려는 집주인들, 그리고 오른 집값의 효과로 오른 가격을 얻으려는 주변거주주민과, 중간에 이득을 늘리는 부동산 등등. 그러한 재개발은 물론 더 개선된 주거지를 제공할지도 모르고, 더 좋은 환경을 구성한지는 모르겠다. 재개발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재개발로 형성되는 많은 이익들은 분명히 재화가 새로 창출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개발에 있어서 재개발을 진행시키는 우리의 시각은 너무나도 차갑다. 재개발이 필요가 아닌 이익의 논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필요의 논리로 작동하는 재 개발은 적재 적소에 적용되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일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이익의 논리에 따라 재개발의 논리가 작동하면, 멀쩡히 살만하고, 지가가 높은 지역에 재개발을 하려 하게 된다. 이번에 용산참사가 있었던 지역이 솔직히 굳이 재 개발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던 곳이었는가. 하지만 이익의 논리는 필요성에 의한 재개발을 부정하게 된다. 이익이 되는 지역에 재개발을 하고, 이익을 얻는다. 입주자와, 거주민들의 사정은 이런 이익 추구의 과정에서 냉정하게 배제해야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결국 기업은 이러한 재 개발에 차가워지고, 주변거주민들도 재개발로 인해 자신들이 얻을 지가 상승 효과때문에 냉정해 지게 되며, 미디어로 재개발을 접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재개발이라는 데에, 원칙적으로 제3자라는 입장을 가지기 때문에 제 3자의 냉정함 이상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재개발이 필요에 의한 재개발이 아닌, 오로지 이익이 된 재 개발의 역학 안에서는 사람은 소외되고, 문화도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재개발은 그렇게 차갑고 냉정하다. 사람의 얼굴을 한 따뜻한 재 개발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일까.

 달동네 리 모델링. 인간의 얼굴을 한 재개발.

 최근들어 각종 기업의 공공 프로젝트로 달동네 촌에 벽화를 그려주어 주거 여건을 개선하려 하는 노력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이전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서 사실 예술의 영역에 가까웠지만 최근들어 실질적인 기업의 흥보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작업이 되었다. 
 재개발을 통해 주거지와 주변 여건을 개선하는 방식은 근본적이기는 하나, 이러한 재개발의 과정 안에서, 기존 주거 주민이 실질적인 혜택을 얻기란 쉽지 않다. 반복되는 재 개발은 결과적으로는 전체적인 지가 상승을 가져 오고, 최종적으로 취약계층에게 수도권 외곽으로 벗어나게 만드는 효과로 귀결된다. 달동네를 헐어내고, 메이커 아파트를 재 개발한다 하여도, 거주민들이 과연 분담금을 낼 수 있을만한 형편이 되지 않고, 재개발의 남용으로 결국 새로운 주거지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재개발 소식만 들려와도 부동산 가격이 급속히 뛰어 오르는 우리 나라의 민감핝 부동산 가격과 관련 짓는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과도한 재 개발에 의존하여 여건을 해결하는 것보다, 사회봉사적 차원에서 이러한 여건 개선의 방식도 있을 수 있다. 최근 기업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달동네 벽화 봉사와 같은 것들도 비록 효과가 미비하고 구조적 해결이 어렵지만, 부수적인 방식으로써, 인간적인 재개발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적 재개발의 추구는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연구한다면,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by tranGster | 2009/10/10 17:03 | D:/일상적인정치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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