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7일
27. 미술인가 공예인가?
1. 공예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뭘까요? 네 당연히 노동력의 투여 정도 이지요. 노동력을 얼마나 투여했는가에 따라서 공예는 확연하게 퀄리티의 차이를 드러 내게 됩니다. 아 물론 장인은 물건을 만드는 시간이 빠르겠지요. 장농을 하나 든다고 칠 때 보통수준의 장롱제작자가 30시간이 걸린다면, 장인의 경우에는 15시간이 걸릴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장인의 경우에는 그동안 장인이 되기 위해 투여한 누적노동이 들어가 있지요. 이러한 누적노동시간까지 계산한다면 노동력의 투여 정도는 장인이 훨씬 월등할겁니다. 공예의 경우는 결국 자신의 분야에 얼마나 노동력을 많이 들였는지가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됩니다.
2. 미술도 공예의 이러한 노동투여의 성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얼마나 더 많은 노동을 들였는가가 좋은 작품을 판가름 하는 기준이 됩니다. 문제는 미술의 노동과 공예의 노동간에는 상이한 차이점이 있다는 겁니다.
3. 공예의 노동의 이상은 기술의 완전한 구현입니다. 즉 공예분야에 표현할 수 있는 많은 기법이나 기술들을 완전히 체득하여 그것을 최상의 상태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죠. 공예의 최상의 아름다움은 거의 완벽하기 이를데 없는 놀라운 완성도입니다. 도저히 이런것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완성적인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죠. 그리고 공예의 궁극적인 목적은 '상품화'입니다. 공예를 통해 만들어진 것들을 상품화하고, 투여된 노동만큼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공예의 도덕은 가격이 높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술은 이러한 완성도로는 최상의 아름다움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미술의 아름다움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름다움인 '예쁜것.'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죠. 또 미술의 목적또한 상품화가 아닙니다. 물론 상품으로 거래되고 있고 상품의 가치를 지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상품으로써의 가치만을 추구할 경우 공예와의 독립성이 모호해지며, 잘 팔리고 비싼 작품 즉 상품성 있는 작품이 꼭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지 않기 때문에 상품성이 미술의 주 목적일 수는 없는 것이죠. 공예가 비쌀수록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미술의 도덕은 공예의 도덕인 상품성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것이죠.
4. 그렇다면 미술의 가장 중요한 이상은 무엇인가? '예술적 쾌(快)'라고 하면 될 듯 합니다. 파격성, 참신성, 사회성, 등등의 모든 예술적 평가기준들은 전부 이 예술적 쾌에 포함되는 기준들 인 것이죠. 다만 어떤 시대에 어떤 것이 더 주목받는가의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예술적 쾌를 딱 '이거다!' 라고 설명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인듯 합니다. 예술적 쾌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또 사회 분위기에 따라 다르며 지역적인 분위기에 따라서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지요. 또 개인에 따라 느끼는 예술적 쾌 또한 너무 다릅니다. 그렇기에 예술적인 쾌를 정의하는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쁜 꽃 그림에서 예술적 쾌를 느낄 수 있지만 저같은 사람은, 사회 밀접성과 , 작업 안의 이야기의 구성 정도에서 쾌를 느끼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 두 가지중 하나가 옳고 하나는 그르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5. 그러나 만약에 미술이 공예와 같이 엄청난 노동력을 투여하여 작품을 구성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공예의 판단 기준과는 좀 다르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미술이 공예의 면모를 추구하는 것은 예술이 공예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공예에서 볼 수 있는 몇가지 특성들을 끌어 옴으로써 이야기를 구성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팝아트가 생산성을 추구한것은 팔아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상품의 생산성이라는 것을 미술 안에 끌고 들어와서 그것이 팔리는 것으로 무언가 이야기를 구성하려 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흔히 아는 앤디 워홀의 경우가 그렇지요. 대량생산되는 상품을 예술의 영역에서 구현함으로써 대중소비시대의 미술에 대해 논하려고 했던 것이죠. 그렇기에 미술에 들어있는 공예적인 요소를 보고서 '미술과 공예의 차이가 없다.' 라고 할 수는 없는 거겠죠.
6. 물론 미술에도 노동력은 중요하지만, 이 노동력의 기준도 예술의 쾌의 기준 만큼이나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사람은 동양화 먹선만 20년 연습해서 선 하나를 그을수 있지요. 이러한 선의 숙련도로 사람들을 전율 시키고 이야기를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불합리한 사회상을 고발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 철거민들과 농성을 함께 하며 그 체험을 작품으로 만들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그 체험 또한 노동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적 쾌가 다른 만큼 노동의 종류와 방식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건 공예는 노동력이 중요하지만 미술은 노동력이 중요하나, 노동력은 단지 자신이 작품에서 보여주려 하는 예술적 쾌를 잘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 뿐입니다.
7. 물론 공예도 신의 경지에 이르르면 예술성이 추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공예는 예술적 쾌가 상품성을 추구하기 위한 부차적인 부분으로만 존재합니다. 반면에 미술은 예술적 쾌가 근본이 되고, 상품성과 노동력은 부차적인 것이 되죠. 이 차이가 바로 결정적인 미술과 공예의 차이를 규정짓지 않는가 합니다.
# by | 2009/11/07 01:22 | C:/예술은무슨술인가 | 트랙백 | 덧글(1)



